아내와 결혼 직후 뉴욕 여행을 갔을 때 지금보다 훨씬 "뉴욕스런" 지하철을 탔었다.
그때 내 인상에 가장 남았던 것은 ( ?)냄새도 아니고, 무서운 인상의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안내방송으로 말하자면, "문이 닫히니 뒤로 한걸음 물러 나세요."에 해당할텐데, 그들이 쓰는 이 표현이었다.
그것은,
Stand clear of the closing doors!
Stand clear of the closing doors!
짧지만 얼마나 선명하고 이해하기 쉬운가.
15년도 넘은 지금 여전히 저 안내방송이 나오는 지는 모른다.
언어의 경제성이랄까,
그게 뭐가 대단한가 쉽고 그들 말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싶다가도, 그때 내가 받은 이 작은 충격은 그 이후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사용하는 영어문장을 좀 더 관심있게 듣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뉴욕여행이후 10년 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노스캐롤라이나에 잠시 살면서 다시 한번 뉴욕에 갔었다. 2017년엔 링컨 브릿지 건너 뉴저지에 에어비앤비에 숙소를 잡고 아이들과 센트럴파크와 메트로폴리탄, 자연사박물관 등 아이들과 추억을 만드는 데 더 의미를 두었는데 아이들은 너무 어려 기억의 편린으로만 남아있나보다.
나는 여행지에서 시간이 길어지면 관광객, 관람객에서 이방인, 이주자의 느낌이 전환되는 순간을 자주 느끼는 데,
뉴욕은 10일이 아마 그 경계가 아닐까 싶다.
그 경계를 넘어서면 관찰자모드에서 생활자 모드로 전환되면서 여행의 신기성, 체험에 대한 기대보다 일상의 팍팍함, 삶의 수고로움이 전이되기 때문이다.
주변에 미국에 대한 방문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할수록 뉴욕주와 뉴욕시를 구별하지 않고, 또 맨해튼 하나 만을 뉴욕시로 인식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맨해튼은 15세기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자들이 어메리칸 인디언들에게 60길더치의 가죽 등 물건과 교환했다고 한다. 60길더는 24달러에 해당하지만 실제 당시의 가죽, 럼주 등 현물의 가치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수백만원에서 2천만원 사이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맨해튼을 포함한 뉴욕시의 GDP가 미국의 카운티중 2위이고, 폴란드와 같은 나라보다 많다는 기록이 있다니 170만 인구에 수원시보다 더 작은 이 도시의 변화 발전은 말 그대로 어메이징하다.
2008년의 뉴욕 할로윈즈음 11월말이 그렇게 추운 것도 기억에 남고,
맨해튼 38번가 근처 인가에서 여친과 쇼핑하던 가수 '유열'씨도 기억에 남았다.
그때 아내에 뱃속에 있던 아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빅 애플(Big Apple)'은 여전히 큰 존재감이 있다.
한 도시의 기억은 풍경과 랜드마크, 소리와 냄새로도 남는데 나에게 뉴욕은 저 지하철 안내방송 소리로도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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